우리는 보통 권력과 싸울 때 무거운 주제를 꺼내 든다. 헌법, 프라이버시, 인권 같은 단어들은 이미 진지함의 무게로 어깨를 짓누른다. 그런데 존 스튜어트의 쇼에서 전자 프론티어 재단(EFF)의 신디 콘이 웃으면서 디지털 권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무게가 조금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웃음은 권력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또 하나의 무기다. 기술이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 그 지배에 저항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어쩌면 유머일지도 모른다.
기술은 본래 중립적이라고 배웠다. 도구는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선악이 결정된다고. 하지만 20년 넘는 세월 동안 코드를 짜고 시스템을 설계하며 느낀 것은, 기술이 중립적이라는 말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라는 사실이다. 알고리즘은 편견을 학습하고, 데이터는 권력을 강화하며, 플랫폼은 이용자를 감시한다. 중립성은 없다. 단지 우리가 그 불편한 진실을 얼마나 외면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EFF가 싸우는 대상은 늘 정부와 대기업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안전’과 ‘효율’이다. 하지만 그 안전이라는 이름 아래 수집되는 데이터는 개인의 삶을 샅샅이 파헤치고, 효율이라는 미명 아래 도입되는 시스템은 인간의 판단을 기계에 맡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술의 침투가 점진적이라는 점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감시 사회가 도래하지 않는다. 그저 ‘편리한 기능’ 하나, ‘보안 강화’ 한 번, ‘맞춤형 서비스’ 한 차례씩 쌓이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감시의 그물 안에 갇혀 있다.
기술이 권력을 강화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를 감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감시당한다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것이다.
신디 콘이 존 스튜어트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통제하는 주체다. 그런데 그 통제라는 개념이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AI는 누가 통제하는가?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은 누가 설계하는가? 클라우드에 저장된 데이터는 누가 소유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명확한 답이 없는 것이 현대 기술의 아이러니다. 우리는 점점 더 복잡한 시스템에 의존하면서도, 그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마치 신비로운 주술에 의지하는 원시 부족처럼.
기술이 가져온 변화 중 가장 무서운 것은 아마도 ‘무감각’일 것이다. 매일 수백 개의 광고에 노출되고, 수십 개의 앱이 우리의 행동을 추적하고, AI가 우리의 취향을 예측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침해에 분노하지 않는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긴다. 프라이버시 침해가 뉴스에 보도되면 잠시 분노하지만, 다음 날이면 또 다른 편리한 서비스를 찾는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민감도를 마비시킨다.
그런데 웃음이 이런 무감각을 깨뜨릴 수 있을까? 존 스튜어트의 쇼에서 신디 콘이 보여준 것처럼, 유머는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만든다. 권력의 부조리를 웃음으로 비틀면, 그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다. 하지만 웃음은 또한 무력해질 위험도 있다. 권력에 대한 풍자는 때로 저항의 에너지를 희석시키기도 한다. ‘그냥 농담일 뿐’이라는 말로 진지한 논의를 회피하게 만들 수도 있다.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논할 때, 우리는 종종 극단적인 입장을 취한다. 기술은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이거나, 아니면 파멸을 불러올 악마라는 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기술은 도구다. 그 도구가 어떻게 사용되느냐는 결국 인간의 선택에 달렸다. 문제는 그 선택의 순간에 우리가 얼마나 깨어 있느냐는 것이다.
EFF가 하는 일은 바로 그 선택의 순간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기술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우리가 잊고 있던 권리를 일깨운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종종 소수에 머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술의 편리함에 취해, 그 이면의 위험을 외면한다. 어쩌면 우리가 필요한 것은 신디 콘 같은 사람이 아니라, 존 스튜어트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권력의 부조리를 웃음으로 비틀어내어, 사람들이 그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
기술은 더 이상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고, 따라서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되었다. 코드를 짜는 개발자만이 아니라, 그 코드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이 기술의 윤리와 방향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laughter가 권력을 향한 저항의 한 형태라면, 그 웃음이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저 웃고 넘기는 사이에, 기술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존재가 될 테니까.
이 인터뷰를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기술의 미래를 논할 때 우리가 너무 진지해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웃음으로 권력의 허를 찌르고, 유머로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웃음이 결국은 더 큰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어떤 기술을 원하고,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웃음 속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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