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글란(Baghlān).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쿤두즈와 폴리쿰리 사이에 놓인 고대의 땅. 이 지역을 흐르는 쿤두즈 강이 비옥한 평야를 만들어냈다. 사막의 나라라고 알려진 아프가니스탄에도 이런 푸른 땅이 있다.
마흔이 넘어 녹색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서울의 콘크리트 사이에서 살다 보면 녹색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바글란의 사람들에게 이 비옥한 땅은 어떤 의미일까. 물이 흐르는 곳에 생명이 모인다. 코드도 마찬가지다. 데이터가 흐르는 곳에 로직이 모인다.
설탕의 고향
바글란은 아프가니스탄 최대의 설탕 생산지였다고 한다. 바글란 설탕 공장. 1940년대에 지어져 수십 년간 이 지역의 경제를 지탱했던 곳.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수십 년의 전쟁이 공장에 무슨 일을 했을까.

산업이 멈추면 마을이 멈춘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경험했던 산업화의 기억이 떠오른다. 공장이 생기면 사람들이 모이고, 공장이 닫으면 사람들이 흩어진다. 기술 산업도 마찬가지다. 플랫폼이 성장하면 개발자가 모이고, 플랫폼이 사라지면 흩어진다.

실크로드의 기억
바글란 지역에는 고대 불교 유적이 있다. 박트리아 문명의 흔적. 실크로드가 지나던 길목. 동서양의 상인들이 이 길을 걸었다. 중국의 비단이, 인도의 향신료가, 로마의 유리가 이 땅을 지났다.
요즘 나는 API를 실크로드에 비유한다. 데이터가 오가는 길. 서로 다른 시스템을 연결하는 통로. 고대의 상인들이 물건과 함께 문화를 전했듯이, API는 데이터와 함께 프로토콜을 전한다. 형식이 맞아야 소통이 된다.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평원 위의 삶
바글란의 사람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한다. 밀, 면화, 쌀. 계절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삶. 스프린트와 데드라인에 쫓기는 내 삶과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곳.
가끔 상상한다. 만약 내가 코드 대신 밭을 일궜다면 어땠을까.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기다리는 삶. 자연의 시간에 맞추는 삶.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농부의 삶도 쉽지 않다는 것을. 어떤 삶이든 각자의 어려움이 있다.
바글란의 평원 위로 해가 진다. 쿤두즈 강이 노을빛을 받아 반짝인다. 먼 곳의 평화를 빈다. 그리고 내 자리에서 내 일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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