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 초반, 기술 산업은 다시 한번 열병에 걸렸다. 이번에는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의 열병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딥러닝’이나 ‘머신러닝’이라는 단어는 연구실이나 학술 대회에서나 들리던 용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든 제품 설명서와 마케팅 카피에 그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마치 ‘클라우드’나 ‘빅데이터’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AI’가 모든 문제의 해결사로 포장되었다. 하지만 이 열기가 진짜 혁신을 품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또 하나의 거품을 부풀리고 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최근 몇 년간 쏟아져 나온 AI 도구들은 놀라운 성능을 과시했다. 이미지 생성, 텍스트 요약, 코드 자동 완성 등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작업들이 이제는 몇 초 만에 처리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은 조금 다르다. 대부분의 AI 시스템은 사실상 거대한 패턴 인식 기계에 불과하다. 인터넷에 널린 데이터를 짜깁기해 그럴듯한 결과를 내놓는 것일 뿐, 진정한 이해나 창의성은 없다. 마치 백과사전을 통째로 외운 사람이 시를 쓴다고 자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결과물이 때로는 놀랍게 보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의미나 맥락은 얕기 그지없다.
문제는 이런 얄팍한 성능이 마치 혁명인 양 포장된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AI를 도입하면 생산성이 몇 배로 오를 것처럼 선전하지만, 실제로는 데이터의 질에 따라 결과물이 천차만별이다. 쓰레기 데이터를 넣으면 쓰레기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마치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기술에 대한 무지와 과도한 기대감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과거 닷컴 버블이나 블록체인 열풍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기술이 가진 진짜 가치를 보지 못하고, 그저 유행에 편승하려는 욕망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거품.
AI는 마법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우리가 쌓아온 데이터의 거울일 뿐이다. 그 거울에 비친 우리의 얼굴이 아름답지 않다면, 그것은 거울의 탓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AI가 가진 환경적 비용이다. 대규모 언어 모델을 학습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GPT-3를 학습시키는 데 소모된 전력은 한 가구가 10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에 달한다고 한다. 이런 비효율성을 정당화할 만한 가치가 AI에 정말 있는 것일까? 기술이 진보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 반대일 수도 있다. AI가 가져온 편리함이 과연 그 대가를 치를 만한 것인지, 이제는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다.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는 인간의 윤리나 사회적 합의를 따라잡는 속도보다 빠르다. AI가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저작권 문제를 야기하고, 자동화는 일자리 문제를 심화시킨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논의하지 않은 채, 그저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기술을 무작정 받아들인다. 마치 어린아이가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넣었을 때처럼, 그 결과가 어떨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신기함에 취해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AI가 거품이라는 주장은 단순히 기술의 한계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기술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술은 도구일 뿐인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 도구가 우리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었다.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인간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다. 진정한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다.
이제 우리는 AI라는 거품이 터지기 전에, 그 안에 담긴 진짜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AI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냉정하게 구분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기술이 가져온 편리함에 취해 잊고 있던 것들—창의성, 윤리, 환경—을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거품이 터지고 나면,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질문은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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