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의 성평등 보고서를 읽다 보면 한 가지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성별 격차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형태가 과거와는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20세기의 명백한 차별—임금 격차, 승진 제한, 채용 배제—은 공식적으로는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문제는 이 장벽들이 기술의 발전과 맞물리면서 더욱 복잡해졌다는 데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20년을 살아온 입장에서, 이 변화는 단순히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기술 생태계의 근본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기술 산업은 늘 “능력주의”를 표방해왔다. 코딩 테스트, 알고리즘 경진대회, 오픈소스 기여도—이 모든 지표가 실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척도로 사용된다. 하지만 데이터는 이런 시스템이 실제로는 성별 편향을 재생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AI 채용 도구의 경우 과거 채용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남성 지원자에게 유리한 패턴을 강화한다. 알고리즘은 중립적일 것 같지만, 그 기반이 되는 데이터가 편향되어 있다면 결과물도 편향될 수밖에 없다. 이는 기술이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라, 기존의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 문제가 기술 산업의 구조적 특성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이다. 스타트업 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996” 근무 방식(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 6일 근무)은 가정 돌봄의 책임을 주로 여성에게 전가하는 사회에서 여성 개발자들의 경력 단절을 가속화한다. 또한, 오픈소스 프로젝트에서 여성 기여자의 비율이 10% 미만이라는 통계는 기술 생태계가 얼마나 배타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코드는 누구나 작성할 수 있지만, 그 코드가 인정받기 위한 환경은 그렇지 않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개발자의 손끝에서 탄생한 시스템은 그 개발자의 편견, 경험, 심지어 무의식까지 담아낸다. 문제는 그 시스템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기술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답은 “할 수 있다”와 “하지 않는다” 사이 어딘가에 있다. 예를 들어, 깃허브의 코드 리뷰 자동화 도구는 성별이나 인종에 따른 편향을 줄이기 위해 익명화 기능을 도입했지만, 이는 일시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 진정한 변화는 기술의 설계 단계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개발자들이 성평등을 고려한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먼저 자신의 무의식적 편견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도덕적 요구가 아니라,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기술적 필수 조건이다.
기술 산업이 성평등을 향한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데이터의 투명성이다. 채용, 승진, 보상 체계에서 성별 격차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명확히 측정하고 공개해야 한다. 둘째, 문화의 변화다. “능력주의”라는 미명 아래 숨겨진 편견을 드러내고, 다양성을 기술 혁신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이는 개발자 개개인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조직과 산업 전체의 과제이기도 하다.
OECD의 보고서는 성평등이 경제 성장의 필수 요소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기술 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단순히 경제적 논리를 넘어선 문제다. 편향된 시스템은 편향된 결과를 낳고, 그 결과는 다시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에서, 그 변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개발자의 손끝에 달려 있다. 문제는 그 손끝이 얼마나 의식적인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OECD의 성평등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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