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가장 쓸모없는 발명품이 뭘까? 아마 많은 이들이 러닝 머신을 떠올릴 것이다. 땀 흘리며 달리는데 제자리걸음인 이 기구는, 운동의 효율성과는 별개로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만약 이 러닝 머신이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면? 자연 속에 버려진 바퀴를 보고 야생 동물들이 자발적으로 뛰어올랐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가 그동안 기술과 본능의 관계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2014년 네덜란드 연구진이 야생에 설치한 러닝 휠에서 포착된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쥐, 개구리, 심지어 달팽이까지 그 바퀴 위에서 자발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더 놀라운 점은, 이 행동이 먹이 보상이나 위협 같은 외부 자극 없이 순전히 ‘즐거움’이나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내재적 동기’로 설명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도대체 왜?
이 현상은 기술이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 자연과 만나면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인간이 만든 도구가 본래 목적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될 때, 우리는 종종 그것을 ‘오용’이나 ‘의도치 않은 결과’로 치부한다. 하지만 야생 동물들의 러닝 휠 사용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기술이 본능과 만나면 어떻게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쥐들이 바퀴 위에서 달리는 행위는, 어쩌면 인간의 ‘운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자연의 일부였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연구가 단순히 동물 행동학의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술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든 도구가 사용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될 때, 그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스마트폰이 사회적 고립을 부추긴다거나, 소셜 미디어가 집단 극화를 조장하는 현상은 이미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야생 동물들의 러닝 휠 사용은 그보다 더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술이 인간의 손에서 벗어나면, 과연 어떤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낼 것인가?
기술은 본능을 자극하고, 본능은 기술을 재정의한다. 그 경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이 연구는 또한 ‘놀이’의 본질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준다. 쥐들이 러닝 휠 위에서 보인 행동은 놀이와 유사한 특성을 지녔다. 놀이는 동물 행동학에서 학습, 스트레스 해소, 사회성 발달 등 다양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운동도, 그 근원에는 놀이의 본능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헬스장에 가서 러닝 머신을 뛰는 행위도, 어쩌면 야생 쥐들의 바퀴 달리기와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 것일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이 현상은 기술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인간이 만든 인공물이 자연에 스며들 때, 그것은 때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새로운 행동을 창출한다. 드론이 새들의 비행 경로를 바꾸고, 인공 조명이 곤충들의 생체 리듬을 교란하는 것처럼. 하지만 러닝 휠의 사례는 그보다 더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술이 자연과 조화를 이룰 때,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공생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를 접하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가 기술의 ‘사용자’라는 개념에 너무 갇혀 있다는 점이다.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의도대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때로는 자연이, 때로는 본능이, 때로는 우연이 그 사용법을 재정의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기술의 진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러닝 휠이 쥐들의 놀이터가 된 것처럼, 어쩌면 우리가 만든 모든 기술은 언젠가 본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될 운명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연구는 2014년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 게재된 논문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야생 동물들의 러닝 휠 사용은 단순한 curiosities가 아니다. 그것은 기술과 본능, 자연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대화이며,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기술의 본질을 보여주는 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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