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동네 공터에서 친구들과 ‘진실 게임’을 하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가 눈을 감고 질문을 하면, 나머지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거짓말을 섞어 대답해야 했다. “너 오늘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어?”라는 질문에 “아무 일도 없었어”라고 답하면,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맞춰야 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시간이 지날수록 모두가 조금씩 진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하면서도 스스로는 ‘진짜’를 말하고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었다. 게임이 끝나고 나면 누구도 처음의 순수한 진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헝가리의 2026년 총선 캠페인은 이 어린 시절의 게임을 연상시킨다. 다만, 이번에는 기술이 그 왜곡의 규모와 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키웠다. The Atlantic의 보도에 따르면, 헝가리의 집권당 피데스는 유권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화된 메시지를 대량 생산해 유포했다. 문제는 그 메시지가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짜 뉴스나 조작된 이미지가 아니라, 개인의 편견과 두려움을 정확히 겨냥한 ‘맞춤형 진실’이었다. 예를 들어, 한 유권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실은 반대 진영과 비밀리에 협력하고 있다는 ‘증거’를 받았다. 그 증거는 그가 평소 신뢰하던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이 선별해 보여준, 철저히 조작된 대화 내용이었다. 그는 그 메시지를 사실로 받아들였고,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다.
이 캠페인은 단순히 가짜 뉴스의 확산을 넘어섰다. 기술이 진실의 개념 자체를 해체한 것이다. 과거에는 진실이란 객관적인 사실에 기반해 있었다. 언론이 보도하고, 전문가가 검증하며, 시민들이 토론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다듬어져 갔다. 그러나 이제 진실은 데이터 포인트의 집합으로 변모했다. 개인의 행동 패턴, 검색 기록, 소셜 미디어 활동은 모두 알고리즘에 의해 분석되고, 그 결과는 다시 개인에게 ‘맞춤형 현실’로 되돌아온다. 이 현실은 객관적이지 않다. 오히려 개인의 편견을 강화하고,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심화시킨다.
개인화 기술은 본래 편의를 위해 개발되었다. 넷플릭스가 시청자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추천하고, 아마존이 구매 이력을 분석해 상품을 제안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기술이 정치에 적용되면,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린다. 민주주의는 공통의 현실을 전제로 한다. 시민들이 동일한 사실에 기반해 토론하고,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하지만 맞춤형 현실은 각자가 다른 ‘진실’을 경험하게 만든다. 더 이상 공통의 토대가 없다. 이는 정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간의 대화가 되어버린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기술이 추구하는 가치는 그것을 설계한 인간의 가치다. 그리고 그 가치 중 하나는 효율성이다. 개인화 기술은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개인의 선호와 편견을 강화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다.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고, 타협이 이루어지며, 때로는 시간이 걸린다. 기술이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없는 이유다.
헝가리의 사례는 기술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헝가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유권자의 행동을 분석하고, 정치 캠페인은 그 데이터를 활용해 메시지를 최적화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이 ‘탈진실’을 넘어 ‘탈현실’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은 더 이상 외부 세계의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개인화된 시뮬레이션이 되어버렸다.
기술이 진실을 해체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기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알고리즘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 데이터는 인간의 편견과 오류를 담고 있다. 따라서 기술에 의한 결정은 항상 인간의 검토와 비판을 거쳐야 한다. 둘째, 공론장의 중요성을 회복해야 한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공론장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 시민들이 직접 만나 토론하고,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강화해야 한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그 한계를 이해하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헝가리의 ‘탈현실’ 정치 캠페인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기술이 진실을 해체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진실로 받아들일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공통의 현실을 회복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어린 시절의 ‘진실 게임’은 결국 모두가 서로 다른 진실을 믿게 만들 뿐이었다. 하지만 정치의 세계에서 그런 게임은 위험하다. 민주주의의 미래는 우리가 이 게임을 끝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원문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