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6년 02월 17일

힌두쿠시의 바람이 가르쳐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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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쿠시. 이름부터가 거칠다. ‘힌두를 죽이는 산’이라는 뜻이다.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로 넘어가던 노예들이 이 산을 넘다 죽어갔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 한다. 잔인한 역사가 새겨진 이름.

힌두쿠시 산맥의 웅장한 설봉들, 바미안 계곡을 둘러싼 높은 산들

그러나 오늘 아침, 해발 2,500미터 바미안 고원에서 맞는 힌두쿠시의 바람은 부드러웠다. 차갑지만 날카롭지 않은. 이 바람은 어디서 왔을까. 파미르 고원? 카라코람? 몇천 킬로미터를 달려온 바람이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사십 대에 산을 오르면 이십 대와는 다르다. 숨이 더 차고, 무릎이 더 아프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다르다. 젊었을 때는 정상만 보였다. 빨리, 더 높이. 지금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보인다. 발밑의 돌멩이, 길가의 풀꽃, 저 멀리 방목되는 양 떼.

바미안 주변 언덕을 걸었다. 특별한 트레킹 코스가 아니었다. 그냥 걸었다. 로컬 가이드는 처음엔 의아해했다. 어디 가는 거냐고. 어디든. 그냥 걷고 싶다고.

바미안 고원의 드넓은 풍경, 푸른 하늘 아래 황토색 대지가 펼쳐진 모습

걷다 보니 작은 마을이 나왔다. 흙벽돌 집들. 아이들이 뛰어나와 구경했다. 외국인이 신기한 모양이다. 한 아이가 손을 흔들었다. 나도 흔들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힌두쿠시의 바람이 가르쳐주었다. 여행의 의미는 도착이 아니라 이동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목적지에 집착한다. 버킷리스트, 인스타그램 스팟, 꼭 봐야 할 명소. 그러나 정작 기억에 남는 것은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다. 길을 잃었을 때 만난 풍경, 우연히 나눈 대화, 계획에 없던 휴식.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목표를 세우고 달린다. 승진, 내 집 마련, 자녀 교육. 그러나 삶의 진짜 맛은 그 사이사이에 있다. 퇴근길 노을, 아이의 잠꼬대, 오래된 친구와의 전화.

언덕 위에 앉아 바람을 맞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있었다. 이 순간 내가 여기 있다는 것. 살아서 숨 쉬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낀 적이 얼마나 됐던가.

바람이 세졌다. 어디선가 양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하늘에 독수리 한 마리가 원을 그리며 날았다. 이 모든 것이 천 년 전에도, 천 년 후에도 이어질 것이다. 나는 잠시 스쳐가는 존재일 뿐.

그러나 그 스침이 소중하다. 힌두쿠시의 바람과 내 볼이 만나는 이 순간.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순간. 사십 대가 되어 비로소 알았다. 영원을 좇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스침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언덕을 내려오며 생각했다. 돌아가면 더 천천히 걸어야겠다. 목적지보다 과정을. 성취보다 경험을. 바람이 가르쳐준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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