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귀가 열린다. 도톤보리의 네온사인 아래로 쏟아지는 호객 소리, 타코야키 철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소리, 웃음이 섞인 간사이 사투리. 도쿄가 정돈된 문장이라면, 오사카는 느낌표가 난무하는 즉흥 연설 같은 도시다.
마흔이 넘어 다시 찾은 이 도시에서 나는 묘한 위안을 받았다. 체면을 차리느라 지쳐 있던 내게, 오사카의 솔직함은 일종의 해방구 같았다. 여기서는 크게 웃어도 되고, 욕심껏 먹어도 되고, 길 위에서 낯선 이와 농담을 주고받아도 된다.

거대한 사자가 삼키는 것들
난바 야사카 신사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본전 대신 거대한 사자 머리가 입을 딱 벌리고 서 있었다. 높이 12미터, 너비 11미터. 그 위압적인 형상 앞에서 사람들은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이 사자는 악귀를 삼키고 승운을 불러온다고 했다. 나는 문득 삼키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떠올렸다. 40대가 되어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안, 해내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 앞으로 남은 시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것들을 이 사자의 입속에 던져 넣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400년의 침묵이 말하는 것
시텐노지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중 하나다. 593년, 쇼토쿠 태자가 세웠다고 전해지니 무려 1,400년이 넘는 역사를 품고 있는 셈이다. 오사카의 번잡한 거리에서 불과 몇 정거장 떨어진 이곳에, 이토록 깊은 적막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오층탑을 올려다보며 나는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이 탑은 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것. 그것이 어쩌면 존재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마흔이 넘어 몇 번의 좌절을 겪고 나서야, 나는 실패가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의 조건이 될 수 있음을 어렴풋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상 300미터에서 내려다본 삶
아베노 하루카스, 일본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 300미터 높이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오사카는 마치 정교한 미니어처 같았다. 수많은 불빛들, 그 불빛 아래 저마다의 저녁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모든 것이 작아진다. 내가 쥐고 있다고 믿었던 문제들, 놓지 못하던 감정들,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던 목표들. 저 수많은 불빛 중 하나가 나의 일상이라면, 그 일상은 전체 풍경 속에서 얼마나 작은 점에 불과한 것일까. 역설적으로 그 깨달음은 나를 위로했다. 작아도 괜찮다. 그 작은 불빛 하나하나가 모여 이 거대한 도시를 이루고 있으니까.
죽음을 껴안은 사찰에서
이신지는 조금 특별한 절이다. 이곳에는 신도들이 기증한 유골로 만든 불상이 있다. 처음에는 다소 기이하게 느껴졌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알고 나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사랑하는 이의 일부가 부처의 형상으로 영원히 남는다는 것. 죽음마저도 삶의 연장선 위에 놓으려는 이 발상이, 오사카 특유의 삶에 대한 집착과 닿아 있는 것 같았다.

40대는 죽음을 슬슬 의식하기 시작하는 나이다. 부모님의 노화, 동년배의 부고, 그리고 가끔씩 찾아오는 원인 모를 피로감. 하지만 이신지에서 나는 죽음이 반드시 단절이 아닐 수도 있다는 희미한 위안을 얻었다. 우리가 사랑한 것들, 우리가 남긴 것들은 어떤 형태로든 이어진다.
다시, 소란 속으로
이신지를 나와 다시 도톤보리로 향했다. 글리코 간판의 마라톤 선수가 여전히 두 팔을 벌리고 있었고, 강물 위로 네온사인이 일렁이고 있었다. 아까와 같은 풍경인데, 왠지 다르게 보였다. 이 소란 속에 삶의 온기가 있다. 시끄럽고, 정신없고, 때로는 조잡하기까지 한 이 거리가, 어쩌면 살아 있음의 증거인 것이다.
타코야키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뜨거웠다. 그 뜨거움이 좋았다.
— 여행하는 개발자의 오사카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