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초반, 한 해커 그룹이 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 시설 네트워크를 공격해 생산 라인을 마비시킨 사건이 있었다. 당시 보안 전문가들은 “디지털 전쟁의 시대”라며 경고했지만, 정작 그 파장은 예상보다 작았다. 유가가 일시적으로 요동쳤을 뿐, 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기술이 위기를 흡수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지금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다면,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충격이 전 세계를 덮칠 것이다. 디지털 인프라가 아무리 견고해도, 물리적 유통망의 붕괴 앞에서는 무력해지는 순간이 온다.
석유는 여전히 현대 문명의 혈액이다. 전기차와 신재생 에너지가 확산되고 있지만, 화석 연료는 운송, 제조, 플라스틱 생산 등 거의 모든 산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 수송량의 20%가 통과하는 지점이다. 이 좁은 해협이 봉쇄되면, 유가는 단숨에 배럴당 200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문제는 가격만이 아니다. 공급망 자체가 끊기면,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클라우드 데이터센터가 아무리 효율적으로 운영되더라도, 서버를 가동하는 전력은 결국 화석 연료에서 나온다. 반도체 공장이 아무리 자동화되어 있어도, 웨이퍼를 운반하는 트럭이 멈춰 서면 생산은 중단된다.
기술이 위기를 해결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은, 때로 과도한 낙관으로 흐르기 쉽다. 2008년 금융 위기 때 “빅데이터가 모든 것을 예측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고, 팬데믹 초기에는 “AI가 백신을 개발할 것”이라는 기대가 넘쳤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데이터는 과거를 설명할 뿐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고, AI는 기존 지식을 재조합하는 데 그쳤다. 호르무즈 위기도 마찬가지다. 블록체인으로 공급망을 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물리적 유통망이 끊기면 그 투명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율주행 트럭이 도로 위를 달린다 해도, 연료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기술은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호르무즈의 파문이 주는 교훈은, 우리가 여전히 물리적 세계의 제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위기는 기술 산업에도 깊은 고민을 던진다.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 왔지만, 호르무즈 위기는 그 노력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 보여준다. 재생 에너지의 확산은 필수적이지만, 그 속도가 위기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 기술이 제공하는 해법은 결국 현실 세계의 제약 안에서만 유효하다.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는 또한 기술의 “중앙 집중성”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클라우드 컴퓨팅, 글로벌 공급망, 초연결 사회는 모두 특정 지점에 의존하고 있다. 한 지점의 붕괴가 전체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는 구조다. 분산 시스템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하지만 분산에도 한계가 있다. 석유는 분산 저장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며, 전 세계가 동시에 대체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술이 아무리 진화해도, 물리적 세계의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이러한 위기는 기술 개발자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단순히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스템이 견딜 수 있는 충격의 크기를 키우고, 위기에 대한 복원력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그 복원력에도 한계가 있다. 호르무즈의 파문이 서쪽으로 향한다면, 기술은 그 파도를 막아낼 방패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파도에 휩쓸리는 또 하나의 구조물이 될까?
기술은 인간의 창의성이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도구지만, 자연과 물리 법칙 앞에서는 여전히 미약하다. 호르무즈 해협의 위기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우리가 기술에 기대하는 해답은, 어쩌면 기술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의 해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뉴스는 Bloomberg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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