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6년 04월 06일

시장의 자유가 약속한 빛나는 길, 왜 우리는 아직도 어둠 속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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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동네 문구점에서 파는 싸구려 손전등을 사본 적이 있다. 건전지 두 개로 작동하는 그 조그만 불빛은, 밤길을 걷거나 정전이 됐을 때 꽤 쓸모 있어 보였다. 하지만 막상 켜보면 빛은 약했고, 건전지는 금세 닳아버렸다. 그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이게 최선일까?” 더 밝고 오래가는 손전등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동네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이미 더 나은 것을 만들어 팔고 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이 약한 불빛에 의존해야 하는 걸까.

인터넷 속도는 이제 현대 사회의 손전등과 같다.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비추는 필수 도구지만, 그 밝기와 품질은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스위스는 가정에서 25Gbps의 초고속 인터넷을 즐기고 있는데 반해, 미국은 평균 200Mbps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기술, 같은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왜 이런 격차가 벌어지는 걸까. 많은 이들이 “시장의 자유”를 외치지만, 정작 그 자유가 가져다준 결과는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자유시장 옹호자들은 경쟁이 혁신을 낳고, 소비자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경쟁이 일어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지 않은 곳에서는, 독점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소비자는 선택의 여지 없이 비싼 요금과 느린 속도에 묶이게 된다. 미국의 인터넷 시장은 소수의 대형 통신사가 지배하고 있으며, 이들은 기존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거나 인프라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드는 비용과 노력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경쟁자가 없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은 경쟁이 있을 때만 제 기능을 한다. 경쟁이 사라지면, 자유는 독점으로 변질된다.

반면 스위스는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전국적인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을 추진해왔다. 이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인터넷을 공공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고속 인터넷이 경제 성장은 물론 교육, 의료, 행정 등 공공 서비스에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확고하기 때문에, 정부는 적극적으로 인프라 투자에 나서고, 민간 기업도 그 틀 안에서 경쟁한다. 그 결과,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환경을 구축했고, 이는 다시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장의 자유”라는 개념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유는 언제나 규제와 균형을 필요로 한다. 시장이 제 기능을 하려면, 경쟁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정부는 적절한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처럼 통신사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상황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경쟁을 촉진하거나 직접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는 한, 소비자는 영원히 느린 인터넷에 묶일 수밖에 없다.

기술은 언제나 진보한다. 하지만 그 혜택이 모든 이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25Gbps의 속도로 미래를 달리고, 누군가는 여전히 20세기의 손전등 불빛에 의존해야 한다. 이 격차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느냐에 달렸다. 시장의 자유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어쩌면 또 다른 종류의 신화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The Free Market Lie: Why Switzerland Has 25 Gbit Internet and America Doesn’t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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