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이란 존재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로 묘사되어 왔을까? 한 손에는 셰익스피어 전집을, 다른 손에는 포르노 잡지를 들고 있다는 모순적인 비유는 이미 진부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모순이 진부한 이유는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 아닐까. 기술이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고민해 온 지난 수십 년의 역사는, 이 모순을 외면한 채 지나치게 단순화된 해답만을 내놓아 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종종 인간을 이해하는 데 실패하는 시스템으로 귀결되었다.
플레이보이가 남성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욕망과 교양을 서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공존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20세기 중반의 대중문화 속에서 플레이보이는 포르노그래피와 문학 에세이를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남성 독자들에게 “너는 이 둘 모두를 원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도덕적, 문화적 담론은 인간의 욕망을 순수함과 타협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플레이보이는 그 이분법을 거부했다.
기술이 이 문제를 마주한 방식은 어땠을까? 특히 콘텐츠 필터링, 추천 시스템, 그리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늘 두 극단 사이에서 방황해 왔다. 한 극단에는 “모든 욕망은 위험하다”는 도덕적 순수주의가 있다. 이 관점은 포르노그래피, 폭력적 콘텐츠, 심지어는 특정 정치적 견해를 포함한 모든 “유해한” 콘텐츠를 차단하려 한다. 다른 극단에는 “욕망은 중립적이다”는 기술 결정론이 있다. 이 관점은 알고리즘이 인간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며, 그 과정에서 윤리나 사회적 책임은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된다.
문제는 이 두 극단이 모두 인간의 복잡성을 간과한다는 점이다. 도덕적 순수주의는 인간이 욕망을 통해 성장하고, 때로는 그 욕망을 통해 예술이나 철학을 창조한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반면 기술 결정론은 욕망이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며, 그 맥락이 개인의 정체성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한다. 플레이보이가 보여준 것처럼, 인간의 욕망은 결코 단일한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것은 때로 저급하고, 때로 고상하며, 종종 그 경계가 모호하다.
이 지점에서 기술이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떻게 하면 인간의 욕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욕망을 존중하면서도 책임 있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까?”이다. 예를 들어,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클릭과 시청 시간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극적인 콘텐츠를 추천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용자의 정신 건강이나 사회적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 반면, 일부 플랫폼은 “디지털 웰빙”을 내세워 사용 시간을 제한하거나, 특정 콘텐츠를 차단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욕망을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이 건강한 방향으로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플레이보이가 시도했던 것처럼, 기술도 인간의 이중성을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온라인 교육 플랫폼이 학습 콘텐츠와 함께 오락 콘텐츠를 제공한다고 해서 그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이다. 사용자가 학습을 통해 성장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기술의 역할이다. 이는 단순히 “더 많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이 인간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그 복잡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욕망과 교양의 공존은 기술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니라, 기술이 받아들여야 할 인간의 본질이다. 시스템이 인간의 욕망을 단순한 데이터 포인트로 취급하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그 모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플레이보이가 남긴 교훈은, 그 모순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라는 것이다. 기술이 인간의 욕망을 더 잘 이해하고, 그 욕망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적어도 그 시작은 인간의 복잡성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 글은 UnHerd의 기사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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