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속 고블린들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초록색 피부에 뾰족한 귀, 삐딱한 눈매와 날카로운 이빨—중세 유럽의 민담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 생김새가 이제는 디지털 캔버스 위에서 자유자재로 재현된다. 하지만 이 작은 괴물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명확한 형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민속학자들이 기록한 고블린의 초기 모습은 오히려 모호했다. 때로는 작은 요정으로, 때로는 악의적인 도깨비로, 심지어는 자연의 정령과도 혼동되곤 했다. 고블린이라는 단어 자체가 여러 언어의 접점에서 탄생한 것임을 생각하면, 그들의 정체성은 애초부터 유동적이었다.
기술이 고블린의 형상을 고정시킨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판타지 소설, 게임, 영화가 대중문화 속에서 고블린을 하나의 ‘아키타입’으로 자리 잡게 만들었고, 이제는 인공지능이 그 아키타입을 데이터로 학습해 재생산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고블린의 기원이 마치 단일한 신화에서 비롯된 것처럼 단순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실제 민담 속 고블린은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렸고, 그 성격과 역할도 달랐다. 스칸디나비아의 ‘코볼드’가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처럼 묘사된 반면, 영국 민담 속 고블린은 농작물을 망치는 장난꾸러기였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고블린은 대부분 ‘탐욕스럽고 교활한 작은 괴물’이라는 단일한 이미지로 수렴된다.
이 현상은 기술이 문화적 기억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패턴을 추출하지만, 그 과정에서 복잡성과 모호성은 종종 사라진다. 고블린의 기원이 다양한 민담의 혼합물이었듯, 기술도 여러 문화적 요소들을 섞어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이 표준이 마치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고블린이 ‘원래’ 초록색 피부에 삐딱한 눈을 가졌다고 믿게 만드는 것은, 기술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민속학자들에게 고블린은 하나의 종(species)이 아니라, 여러 이야기들이 중첩된 결과였다. 그들이 기록한 고블린은 때로는 인간의 편이었고, 때로는 인간의 적이었으며, 때로는 그저 자연의 일부였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고블린은 거의 예외 없이 ‘악당’으로 그려진다. 이는 기술이 문화적 기억을 단순화하는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기술이 고블린을 재창조하는 방식은, 더 넓게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기억과 역사를 다루는 태도를 반영한다. 인공지능은 과거를 재구성할 때 ‘효율성’을 우선시한다. 복잡한 맥락을 생략하고,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요소만을 취합해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한다. 이 과정에서 고블린의 기원은 마치 단일한 뿌리에서 자란 것처럼 보이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블린의 이야기는 여러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한 결과물이었다. 기술이 그 복잡성을 지워버릴 때, 우리는 고블린의 진짜 기원을 잃어버리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이 고블린의 이미지를 완전히 왜곡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오히려 기술은 고블린이라는 존재를 새로운 맥락으로 이동시켰다. 이제 고블린은 더 이상 민담 속의 괴물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인공지능이 그려내는 고블린은 중세 유럽의 민속과 현대 기술의 결합체다. 이 새로운 고블린은 인간의 상상력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산물이다. 그 점에서 고블린의 기원은 이제 더 이상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기술의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재탄생하고 있다.
이 글은 고블린의 기원을 탐구한 OpenAI의 연구에서 영감을 받았다. (Where the Goblins Came F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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