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6년 02월 15일

제주, 바람이 빚어낸 고요 속에서 나를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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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내리는 순간,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바람이다. 육지의 바람과는 결이 다른, 어딘가 짠내를 머금은 듯하면서도 묘하게 포근한 그 바람. 공항을 빠져나와 렌터카에 오르는 순간부터 창문을 열었다. 에어컨 대신 바람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본능이었는지도 모른다.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어떤 장소는 그저 발을 딛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다독여 준다는 사실이다. 제주는 그런 곳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어깨의 힘이 스르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서울에서 가져온 긴장, 마감에 쫓기던 초조함,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한 걱정. 그 모든 것이 제주의 바람 앞에서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한라산 국립공원
한라산 — 섬의 중심에서 하늘을 떠받치고 선 침묵

한라산을 바라보며 나는 오래된 질문 하나를 떠올렸다. 산은 왜 우리를 압도하면서도 동시에 위로하는 것일까. 해발 1,950미터, 구름을 이불 삼아 잠든 듯한 그 봉우리는 세상의 모든 소란을 삼켜버린 것처럼 고요했다. 어디서든 한라산이 보인다는 것, 그것이 제주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서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닻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40대의 어느 지점에서 나는 자주 이런 고요를 갈망하게 되었다. 성취해야 할 것들의 목록보다, 그저 가만히 서서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 늘었다. 젊을 때는 높은 곳을 정복하고 싶었다면, 이제는 그저 높은 곳을 바라보며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름, 땅이 품은 수백 개의 이야기

제주에는 368개의 오름이 있다고 한다. 오름이란, 화산 활동으로 생겨난 작은 산을 일컫는 제주어다. 처음에는 그저 ‘작은 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올라보니 그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오름은 산이 아니라 제주 땅이 하늘을 향해 내민 손바닥 같았다.

나는 그중에서도 거문오름을 찾았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이 오름은 제주의 용암동굴계를 탄생시킨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했다. 예약제로 운영되어 하루 탐방 인원이 제한되어 있었다. 덕분에 숲은 고요했고, 새소리와 바람 소리만이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거문오름
거문오름 — 수천 년의 시간이 응축된 대지의 자궁

숲길을 걷는 동안, 나는 자꾸만 ‘시작’에 대해 생각했다. 이 땅 아래로 흘러간 용암이 만들어낸 동굴들, 그 위로 자라난 숲, 그리고 그 숲을 걷고 있는 나.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그 시작은 대개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일어난다.

분화구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움푹 패인 그 공간에 나무들이 빼곡히 자라나 있었다. 파괴의 흔적 위에 생명이 자리 잡은 것이다. 마흔이 넘어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 그것이 때로는 두렵게 느껴지지만, 거문오름의 고요한 분화구 앞에 서니 그런 두려움이 조금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무너진 자리에서도 숲은 자라난다. 끝이라고 생각한 곳에서도 새로운 시작은 가능하다.

상처의 기억, 그리고 치유의 언어

제주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4·3을 외면할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망설였다. 휴가지에서 굳이 아픈 역사를 마주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발걸음은 그곳을 향했다. 어쩌면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외면하지 않을 용기가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제주 4·3 평화공원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의 무게가 달라졌다. 수만 명의 이름이 새겨진 위령비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이름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생이었다. 꿈이 있었을 것이고, 사랑하는 이가 있었을 것이고, 내일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끊겼다.

제주 4.3 평화공원
제주 4·3 평화공원 — 기억해야만 치유할 수 있는 것들

역사는 때때로 이토록 잔인하고, 그 잔인함을 기억하는 일은 이토록 무겁다. 전시관을 돌아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먹먹했다. 증언 영상 속 할머니의 눈물, 불타버린 마을의 사진, 유족들이 기증한 유품들. 그것들은 교과서 속 숫자로는 결코 전해지지 않는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공원이 주는 메시지는 절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화해와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었다. 상처를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기억하고, 그래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저마다의 4월을 안고 살아간다. 그것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진정한 봄이 온다.

검은 모래 위에 새긴 발자국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삼양 검은모래해변을 찾았다. 제주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런 해변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현무암이 부서져 만들어진 이 검은 모래밭은 여느 해변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파도가 밀려와 모래를 적실 때마다, 검은빛은 더욱 깊어졌다가 이내 옅어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리듬을 바라보았다.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파도처럼, 삶의 많은 것들도 그렇게 왔다가 간다. 움켜쥐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들.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어쩌면 나이 듦의 지혜인지도 모른다.

삼양 검은모래해변
삼양 검은모래해변 — 밀려왔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신발을 벗고 맨발로 모래를 밟으며 걸었다. 의외로 따뜻했다. 아니, 따뜻한 정도가 아니라 뜨거웠다. 제주의 검은 모래는 햇볕을 품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했다. 예로부터 이곳 사람들은 이 모래찜질로 신경통을 치료했다고 한다.

어둡게 보이는 것들이 실은 가장 많은 온기를 간직하고 있다니, 이 또한 삶의 어떤 진실을 닮아 있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어둠 속에 오히려 따스함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 피하고 싶었던 것들, 마주하기 싫었던 감정들, 그 안에도 치유의 온기가 있을 수 있다는 것. 검은 모래밭 위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돌아가는 길 위에서

공항으로 향하는 길,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돌담과 유채꽃밭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제주는 결국 바람과 돌과 물이 만들어낸 섬이다. 그리고 그 거친 자연 위에서 삶을 일궈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곳이다. 척박한 땅에서 밭을 일구고, 거센 바람을 막기 위해 돌담을 쌓고, 바다에 나가 해녀의 숨을 이어온 사람들.

마흔 넘어 찾은 이 섬에서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대단한 깨달음 같은 것이 아닐 터이다. 다만, 한라산 아래 서서 잠시 숨을 고르는 법, 오름의 능선을 따라 천천히 걷는 법, 상처의 기억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법, 그리고 검은 모래 위에 나만의 발자국을 남기는 법. 그런 작은 것들을 배웠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창밖으로 제주의 해안선이 작아져 갔다. 한라산이 구름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다음에 다시 오겠다고,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아니, 약속이라기보다는 예감에 가까웠다. 이 섬은 나를 다시 부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돌아올 것이다.

제주의 바람이 창문을 두드린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이 섬이 내게 남긴 고요는,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오래도록 마음 한켠에 머물 것이다. 바람의 섬, 돌의 섬, 그리고 치유의 섬. 제주는 그렇게 내 안에 새겨졌다.

— 여행하는 개발자의 제주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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