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한국의 IT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당시 엔지니어들은 비자 스폰서를 찾아 샌프란시스코나 시애틀로 향했고, 그곳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며 ‘글로벌 인재’라는 말을 실감했다. 그 시절 미국은 기술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한 경쟁에서 가장 앞선 나라였다. H-1B 비자 쿼터가 매년 초과 신청되는 현상은 이미 일상이었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은 해외 인재를 ‘스카우트’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인재들이 정착하고자 할 때 마주하는 벽은 비자보다 더 높았다. 영주권 심사 대기 기간은 이미 10년을 넘어섰고, 그 사이 많은 이들이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다. 기술의 세계는 국경을 넘나들었지만, 인간의 삶은 여전히 국경선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국경선이 더 단단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지침은 미국 내 체류 중인 외국인들에게 영주권 신청을 위해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요구한다. 이 조치는 단순히 행정 절차의 변경이 아니다. 이는 기술 인재 유치와 이민 정책 사이의 긴장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미국이 오랫동안 자랑해온 ‘인재 유입’ 모델이 이제 스스로 모순에 빠진 것이다. 기술 혁신을 이끄는 기업들은 글로벌 인재 풀에 의존해왔지만, 그 인재들이 정착하려 할 때 정부는 그들을 ‘외부자’로 취급한다. 마치 거대한 데이터 센터가 전 세계의 서버를 연결하면서도, 정작 그 안에 들어오는 데이터는 철저히 검열하겠다는 것과 같다.
이 결정이 가져올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기술 인재들의 이동성에 있다. 특히 인도와 중국 출신 엔지니어들은 이미 영주권 대기 기간이 10년을 훌쩍 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들은 H-1B 비자로 미국에 들어와 일하면서도, 영주권을 받기 위해 수십 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이제 그 기다림의 기간 동안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요구는, 마치 소프트웨어 개발 과정에서 중간 결과물을 폐기하라는 것과 같다. 이미 시스템에 통합된 인재를 다시 ‘외부’로 밀어내는 것은, 기업의 생산성과 국가의 경쟁력 모두에 손실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이미 이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그들은 인재 유출이 가속화될 것이며, 이는 결국 미국 기술 산업의 혁신 속도를 늦출 것이라고 경고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 조치가 기술과 이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려 한다는 점이다. 기술은 언제나 국경을 초월했다.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전 세계 개발자들이 협업하며 만들어졌고, 클라우드 컴퓨팅은 물리적 위치와 상관없이 데이터를 처리한다. 하지만 이민 정책은 여전히 20세기의 국민국가 논리에 갇혀 있다. 기술이 ‘연결’을 지향하는 동안, 정책은 ‘분리’를 강화한다. 이는 마치 인터넷이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면서도, 특정 국가의 방화벽은 점점 더 높아지는 것과 같은 모순이다. 미국은 기술 혁신의 중심지이면서 동시에, 그 혁신을 이끄는 인재들을 배제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기술은 언제나 사람을 위한 도구였지만, 이제는 그 도구가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이번 조치의 배경에는 코로나19 팬데믹도 한몫한다. 새로운 지침은 영주권 신청자들에게 코로나19 백신 접종 기록을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공중보건 차원의 조치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이민자에 대한 추가적인 장벽으로 작용한다. 백신 접종 증명서가 없는 신청자들은 본국에서 추가 절차를 거쳐야 하며, 이는 곧 신청 포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술 산업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은 이미 백신을 접종했지만, 개발도상국 출신의 인재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처럼 보건 정책이 이민 정책과 얽히면서, 기술 인재들의 이동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의 이 결정은 전 세계 기술 인재 유치 경쟁에 새로운 국면을 열 것이다. 캐나다, 호주, 유럽 등 다른 선진국들은 이미 미국을 대체할 인재 유입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캐나다는 스타트업 비자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영주권 심사 기간을 단축하는 등 적극적인 유인책을 펼치고 있다. 기술 인재들은 이제 미국 대신 다른 나라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미국 기술 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해외 지사를 확대하고, 원격 근무를 통해 글로벌 인재를 활용하고 있지만, 정작 핵심 인재들이 미국에 정착하지 못한다면 그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 조치는 또한 기술 산업의 다양성에 대한 도전이다.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들은 오랫동안 다양성을 강조해왔지만, 그 다양성은 주로 미국 내 인종이나 성별에 국한되어 있었다. 진정한 다양성은 글로벌 인재 풀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그 다양성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미국에 정착하지 못한다면, 기술 산업의 혁신도 결국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기술은 언제나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할 때 더 나은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이제 그 다양성을 스스로 차단하려 한다.
결국 이 문제는 기술과 이주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술은 국경을 초월하지만, 그 기술을 만드는 사람들은 여전히 국경선에 갇혀 있다. 미국은 기술 혁신의 중심지이면서 동시에, 그 혁신을 이끄는 인재들을 배제하는 모순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 모순은 언젠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은 기술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잃을 위험에 처할 것이다. 기술 인재들이 다른 나라로 향하는 순간, 미국의 혁신 엔진은 서서히 멈출 수밖에 없다.
이번 뉴스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워싱턴포스트의 원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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