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대한 굴뚝과 조선소의 크레인을 떠올릴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산업화의 상징,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쇳물이 흐르는 도시. 그런 선입견을 안고 이 도시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울산은 내 예상을 가볍게 배신했다. 이 도시는 쇳물만큼이나 푸른 것들로 가득했다.

369만 평의 숨
울산대공원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369만 평. 숫자로는 감이 오지 않아 그저 걷고 또 걸었다. 장미원을 지나고, 생태숲을 지나고, 동물원을 지나도 공원은 끝나지 않았다. 도심 한가운데 이런 규모의 녹지가 숨어 있다니.
마흔이 넘으면 걷는 행위의 의미가 달라진다. 젊을 때는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면, 이제는 걷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오후의 햇살,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 울산대공원에서의 걸음은 마치 오랫동안 참아왔던 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고래가 떠난 바다, 고래를 기억하는 사람들
장생포. 한때 이곳은 한국 고래잡이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고래 대신 고래의 기억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는 동안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한때 이곳 사람들의 생계였던 고래잡이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생태계 보전이라는 관점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의 상실감은 어디로 갔을까. 전시된 작살과 해체 도구들 사이에서 나는 사라진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잃으며 살아간다. 잃어버린 것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박물관 옆 고래문화마을에서 벽화를 구경하며 걸었다. 알록달록한 벽화 속에서 고래들은 여전히 유영하고 있었다. 떠난 것들은 이렇게 기억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호수가 품은 저녁
서남호수공원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수면 위로 하늘빛이 번지고, 산책하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길게 늘어졌다. 인공 호수라고 했다. 인간이 만든 것이 이토록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벤치에 앉아 물을 바라보았다. 호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좋았다. 마흔 넘어 가장 갈구하게 된 것이 바로 이런 침묵이다.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저 있어도 되는 공간. 울산의 이 호수는 그런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도시의 기억을 더듬다
울산박물관에서 이 도시의 시간을 훑어보았다. 선사시대의 반구대 암각화부터 현대의 산업 도시까지. 수천 년의 시간이 응축된 전시 속에서, 울산은 단순한 공업 도시가 아니라 유구한 역사를 가진 삶의 터전임을 새삼 깨달았다.

특히 산업화 과정의 전시물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60-70년대, 이 도시에서 땀 흘렸을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저들의 노동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그리고 그 노동의 무게는 저들의 척추와 관절, 그리고 마음에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겼을까.
40대가 되어 나도 어느덧 짊어진 것들이 많아졌다. 가족, 책임, 미래에 대한 불안. 하지만 이 도시를 일군 선배들에 비하면 내 짐은 얼마나 가벼운 것인가. 울산박물관을 나서며 나는 작은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되었다.
쇳물과 고래 사이에서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현대중공업의 거대한 크레인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쇳물이 흐르는 도시에서 고래가 헤엄치던 바다까지. 울산은 그 양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고 있었다.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일과 휴식 사이, 야망과 체념 사이,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균형점을 찾아 헤맨다. 울산은 그 균형을 찾는 법을 나름대로 터득한 도시처럼 보였다.
거대한 공장 굴뚝 사이로 석양이 물들고 있었다. 그 풍경이, 이상하게도, 아름다웠다.
— 여행하는 개발자의 울산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