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미안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보러 온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2001년 3월, 탈레반은 1,500년 동안 이 계곡을 지켜온 두 거대한 석불을 폭파했다. 55미터와 38미터. 세계에서 가장 큰 입불상이었다. 뉴스로 그 장면을 보았을 때, 나는 스물일곱이었다. 분노했고, 슬펐고, 그리고 잊었다. 우리는 대부분의 비극을 그렇게 잊는다.
마흔넷이 된 지금, 나는 그 빈 자리 앞에 서 있다. 절벽에 새겨진 거대한 벽감. 부처가 있었을 그 공간은 이제 텅 비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없음이 있음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사십 대가 되면 상실에 익숙해질 줄 알았다. 부모님의 노화, 친구들의 이별, 한때 전부였던 꿈들의 빛바램. 그러나 익숙해지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나는 여전히 잃어버린 것들 앞에서 멈춰 선다.
바미안의 빈 벽감은 기묘하게 아름다웠다. 파괴의 흔적임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것 때문에. 저 빈 공간이 말하고 있었다. 한때 이곳에 위대한 것이 있었노라고. 1,500년 동안 순례자들이 경배했던 자비의 얼굴이 있었노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 삶에도 이런 빈 자리가 있지 않은가. 떠나간 사람이 앉던 식탁의 의자. 더 이상 울리지 않는 전화기. 한때 사랑으로 가득했던 가슴 한구석. 우리는 그 빈 자리를 채우려 애쓰지만, 어쩌면 그것은 채워져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빈 자리는 기억이다. 무언가 소중한 것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가이드는 현재 유네스코와 국제 사회가 석불 복원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3D 스캔 기술로 원래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다고. 그러나 나는 모르겠다. 복원된 것이 원래의 것과 같을 수 있을까. 상실을 지워버린 것이 치유일까,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망각일까.
해가 기울어 절벽이 붉게 물들 때,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빈 벽감 위로 새 한 마리가 날아 들어갔다 나왔다. 부처가 사라진 자리에 생명이 깃들어 있었다. 파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돌로 된 형상은 부술 수 있어도, 그것이 전했던 자비의 메시지는 부술 수 없다.
사십 대의 순례자는 빈 자리 앞에서 배운다. 상실은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이라는 것을. 없어진 것들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라 감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바미안을 떠나며 나는 결심했다. 내 삶의 빈 자리들을 서둘러 채우지 않기로. 그 빈 공간이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로. 한때 거기 있었던 것들을, 제대로 기억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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