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미안은 한때 세계의 교차로였다. 동과 서, 중국과 페르시아, 인도와 중앙아시아가 만나는 곳. 실크로드의 대상들이 비단과 향신료를 싣고 이 계곡을 지났고, 불교 승려들이 경전을 품고 히말라야를 넘어왔다.

7세기, 당나라 승려 현장은 인도로 가는 길에 이곳을 지났다. 서유기의 실제 주인공인 그는 바미안의 석불을 보고 이렇게 기록했다. “금빛 찬란하여 온 계곡을 비추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먼지 덮인 땅에, 천사백 년 전 현장도 서 있었다. 같은 산을 바라보며, 같은 바람을 맞으며.
사십 대가 되면 시간에 대한 감각이 달라진다. 이십 대에는 미래가 무한해 보였고, 삼십 대에는 현재가 전부였다. 그러나 사십 대에는 과거가 점점 더 무겁게 다가온다. 내가 살아온 시간, 나보다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의 시간.
바미안의 석굴 사원들을 걸었다. 절벽에 벌집처럼 뚫린 수천 개의 굴. 한때 이곳에는 수천 명의 승려가 살았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이 어둠 속에서 명상했을까. 깨달음을 향한 그들의 열망은 어디로 갔을까.

실크로드는 침묵 속에 잠들어 있다. 더 이상 낙타의 방울 소리도, 상인들의 흥정 소리도, 순례자들의 기도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침묵이 비어 있지 않다. 천 년의 발자국이 쌓인 침묵. 수만 명의 이야기가 스민 침묵.
나는 석굴 하나에 들어가 앉았다. 어둠이 눈에 익자, 천장에 희미하게 남은 벽화가 보였다. 연꽃 문양. 천 년 전 누군가가 촛불 아래서 그린 그림. 그 손길이 아직 여기 있다.
우리는 모두 흔적을 남긴다. 의식하든 못하든. 실크로드의 상인들은 비단과 함께 문화를 운반했고, 승려들은 경전과 함께 새로운 세계관을 전파했다.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이 역사가 될 줄 몰랐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았을 뿐인데.
사십 대의 나는 생각한다. 내가 남기는 흔적은 무엇인가. 천 년 후에 누군가 내가 지나간 자리에 서서, 무엇을 느낄 것인가. 아마도 아무것도. 대부분의 삶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무의미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바미안의 승려들도 대부분 이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쌓아올린 것—이 석굴들, 이 벽화들, 이 신앙의 공동체—은 천 년을 버텼다. 개인은 사라져도 함께한 것들은 남는다.
석굴에서 나와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저 아래 작은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여기서 살고 있다. 전쟁과 파괴를 견디며. 실크로드는 끝났지만, 삶은 계속되고 있다.
침묵 속에서 나는 들었다. 천 년 전의 발자국 소리를. 지금 이 순간의 아이들 웃음소리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순례자들 발소리를.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쌓인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