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흐(Balkh). 고대에는 “박트라”, 아랍인들은 “움 알-불단”, 도시들의 어머니라 불렀다. 조로아스터가 이곳에서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곳을 정복했다.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이었다.
이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도시. 그 시간 앞에서 개발자로서의 내 20년 경력이 먼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위안이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오늘의 고민도, 내일의 걱정도.
루미의 탄생지
수피 시인 루미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상처가 있는 곳, 그곳으로 빛이 들어온다.” 그의 시구가 떠오른다. 버그를 고치다 지칠 때마다 이 문장을 떠올린다. 문제가 있는 곳이 성장의 기회다.

루미는 결국 발흐를 떠나야 했다. 몽골의 침략 때문이었다. 고향을 떠나 서쪽으로, 지금의 터키까지. 디아스포라의 삶. 개발자들의 이동도 그렇다. 더 나은 기회를 찾아, 혹은 생존을 위해 도시를 옮기고 나라를 옮긴다.

유적 위에 선 현재
발흐의 현재는 어떨까. 고대의 영광은 유적으로만 남아있다. 하지즈피야샤 묘, 노 곤바드 모스크, 고대 성벽의 잔해들. 한때 찬란했던 도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느끼는 것이 있다.

기술의 세계에서도 수많은 “발흐”들이 있었다.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기술들.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코볼, 포트란, 델파이. 그것들을 다루던 개발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새로운 기술을 배웠을까, 아니면 은퇴했을까.
시간의 무게
발흐의 흙 속에는 수천 년의 역사가 묻혀 있다. 그리스 문명, 불교 문명, 이슬람 문명이 켜켜이 쌓여있다. 고고학자들에게 이곳은 보물 창고다. 파면 팔수록 새로운 것이 나온다.
레거시 코드베이스도 그렇다. 오래된 시스템을 파고들면 수십 년 전 개발자들의 결정이 보인다. 왜 이렇게 설계했을까, 그 당시의 제약은 무엇이었을까. 역사를 이해하면 현재가 보인다.
발흐의 하늘 아래서 역사는 계속 쌓여간다. 우리의 코드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발굴될 것이다. 미래의 개발자가 우리의 결정을 이해해줄 수 있도록, 좋은 주석이라도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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