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도시는 내 안의 속도를 그대로 비춰준다. Karukh에 도착한 첫날, 나는 생각보다 많이 지쳐 있었다. 바쁜 하루를 버티는 기술은 늘었는데, 정작 내 마음을 다루는 기술은 오래전 그대로였다.
사십 대에 들어서며 확실히 알게 된 게 있다. ‘잘 살고 있다’는 말은 성과가 아니라 리듬에 가깝다는 것. 내 리듬이 깨지는 순간, 아무리 많은 것을 이뤄도 마음은 허전해진다.

Karukh의 거리는 거칠고 솔직하다. 숨길 수 없는 표정들이 오간다. 그 솔직함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됐다. 나도 더 이상 괜찮은 척만 하며 살 수 없다는 신호 같아서.
나는 잠깐 멈춰 서서, 내 안에서 계속 울리던 ‘해야 한다’는 소리를 내려놨다. 그리고 대신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묻기 시작했다. 작게는 오늘 저녁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크게는 앞으로의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채우고 싶은지.

여행이 좋은 건, 목표를 잠시 잊게 해줘서가 아니라 목표의 모양을 바꿔줘서다. 더 멀리 가는 것보다, 더 정직해지는 쪽으로. 더 많이 갖는 것보다, 더 잘 쉬는 쪽으로.
나는 이곳에서 ‘버티는 힘’ 말고 ‘회복하는 힘’을 배우고 있다. 어쩌면 남은 인생은, 버티며 버는 시간이 아니라 회복하며 사랑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해가 기울 무렵, Karukh의 하늘이 잠깐 부드러워진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내 자신에게 약속한다. 내일도 성실하게 살되, 내 마음을 소모품처럼 쓰지는 않겠다고.

돌아가는 길에 남는 건 기념품이 아니라 문장이다. Karukh에서 나는 이런 문장을 하나 얻었다. ‘속도를 줄이면, 삶의 결이 보인다.’ 오늘은 그 결을 조금 더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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