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억 달러. Isomorphic Labs가 첫 외부 투자에서 확보한 금액이다. DeepMind에서 스핀오프한 이 회사가 최근 공개한 IsoDDE(Isomorphic Drug Discovery Engine)를 두고 과학자들은 “사실상 AlphaFold 4″라고 입을 모은다.
단백질과 약물 분자 간의 상호작용을 예측하고, 항체 구조까지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한다. AlphaFold3가 열어젖힌 문을 한참 더 밀고 들어간 셈이다. 첫 인체 임상시험도 곧 시작된다고 한다.
그런데, 27페이지짜리 기술 보고서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Isomorphic Labs가 공개한 건 27페이지짜리 기술 보고서가 전부다. AlphaFold가 Nature에 논문을 싣고 코드까지 공개했던 것과는 정반대 행보다.
20년 넘게 이 바닥에서 살아온 개발자로서, 이 상황이 묘하게 씁쓸하다. 과학의 발전이 오픈소스와 공개 논문 위에서 이뤄져왔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수조 원의 R&D 비용이 들어간 결과물을 경쟁사에 그냥 넘겨줄 회사가 어디 있겠나.
오픈 사이언스의 딜레마
DeepMind는 AlphaFold로 명성을 얻었다. 무료로 공개된 AlphaFold 덕분에 전 세계 연구자들이 단백질 구조 예측이라는 “50년 묵은 난제”를 풀 수 있었다. 노벨상까지 받았다.
그런데 그 후속작은? 폐쇄적 상업 회사의 영업 비밀이 되었다. 오픈소스 진영의 연구자들은 IsoDDE의 성능을 따라잡기 위해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한다. 27페이지 보고서에는 “어떻게”가 빠져있으니까.
우리가 마주한 현실
신약 하나 개발하는 데 평균 26억 달러, 10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AI가 이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면, 그 기술을 독점하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AlphaFold가 공개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IsoDDE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오픈소스 위에서 자란 기술이 문을 닫을 때, 우리는 그것을 진보라 불러야 할까, 퇴보라 불러야 할까.
40대가 되니 이런 철학적 질문에 더 자주 빠지게 된다. 정답은 없다. 다만 이 딜레마를 인식하는 것, 그게 시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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