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의학 연구자가 우울증 치료제에 대한 대중 강연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여러분이 심장병 환자에게 ‘심장은 약으로 고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고치는 겁니다’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말을 믿겠습니까?” 청중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웃음 뒤에는 씁쓸한 진실이 숨어 있었다. 의학이 진보할수록, 기술이 복잡해질수록, 오히려 인간의 편견은 더 교묘한 형태로 살아남는 법이다. 최근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의 항우울제 발언은 그런 편견의 최신 사례를 보여준다. 그가 항우울제를 헤로인과 동일선상에 놓은 것은 단순히 과학적 무지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는 기술과 윤리, 그리고 인간의 인지적 한계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다.
기술의 역사에서 이런 사례는 차고 넘친다. 19세기에는 전기가 “신비로운 생명력”으로 여겨지며 사기성 건강기기로 팔렸고, 20세기 초에는 라듐이 만병통치약으로 포장되어 치약과 초콜릿에까지 첨가되었다. 오늘날에는 인공지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마법”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오해들이 단순히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들은 인간의 두뇌가 가진 근본적인 한계에서 기인한다. 우리는 복잡한 시스템을 단순화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왜곡이 발생한다. 항우울제의 작용 기전을 헤로인의 중독 메커니즘과 동일시하는 것은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를 생물학적 바이러스와 혼동하는 것만큼이나 근본적인 오류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오류가 기술적 지식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과잉 속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이런 현상을 바라보면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코드 리뷰를 하다 보면 종종 “이 알고리즘은 느려서 쓸 수 없다”거나 “이 라이브러리는 불안정하니까 절대 쓰지 마라”는 식의 주장이 나온다. 문제는 이런 주장들이 대부분 5년 전의 경험, 혹은 단편적인 사례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하지만, 인간의 판단은 과거의 경험에 갇히기 쉽다. 케네디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그는 항우울제의 부작용 사례를 과장하면서, 그 약들이 가진 복잡한 작용 기전과 임상적 효과를 무시한다. 이는 마치 특정 프로그래밍 언어의 초기 버전에서 발생했던 버그를 근거로 그 언어 전체를 폄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술은 진보하지만, 인간의 편견은 진화한다. 더 교묘해지고, 더 설득력 있게 변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오해들이 단순히 개인적인 믿음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케네디의 발언이 위험한 이유는 그가 공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분야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몇 년 전 한 유명 개발자가 특정 프레임워크를 “쓰레기”라고 비난하자, 수많은 개발자들이 맹목적으로 그 말을 따르며 프로젝트를 포기한 일이 있었다. 문제는 그 개발자의 주장이 특정 상황에서는 타당할 수 있지만,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공적 영향력이 있는 인물의 발언은, 그것이 얼마나 근거가 부족하든 간에, 거대한 파급력을 가진다.
기술과 의학의 공통점은 둘 다 복잡한 시스템을 다루며, 그 복잡성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학습과 겸손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답을 원하고, 확실성을 원하며, 복잡성을 단순화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항우울제가 헤로인과 같다는 주장은 그런 유혹의 산물이다. 복잡한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이해하기보다는, “마약은 나쁘다”는 단순한 도덕적 프레임을 적용하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기술적 지식의 확산이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복잡성을 견딜 수 있는 능력, 즉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지속적으로 학습하는 태도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best practice”가 끊임없이 변하듯이, 의학에서도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특정 기술이나 치료법이 가진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다. 케네디의 발언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영역에서, 얼마나 많은 기술적 진보를, 단순한 편견과 오해로 폄하하고 있는가?
기술이 진보할수록 인간의 편견도 더 정교해진다. 하지만 그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도 바로 그 기술에서 찾을 수 있다. 데이터, 증거, 그리고 지속적인 검증. 이런 것들이야말로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항우울제와 헤로인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과학적 무지의 산물이지만, 그 무지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복잡성을 견딜 수 있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Ars Technica의 원문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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