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입찰 제안서를 작성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뭘까?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도, 경쟁사를 분석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승인된 문서 더미에서 필요한 내용을 찾아 복사하고, 형식에 맞게 재배열하는 일이다. 이 과정은 반복적이고 기계적이지만, 놓치는 순간 제안 자체가 무효화될 수 있는 치명적인 실수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AI에게 맡기면 어떨까? Rfp.ai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승인된 문서만 학습시켜 제안서 초안을 자동 생성하고, 각 문장에 출처를 명시해 준다. 마치 기업 내부의 ‘지식 사서’가 24시간 대기하며 요청을 처리하는 셈이다.
기술적으로는 흥미로운 시도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이 기업 내부 문서를 학습해 특정 형식의 문서를 생성하는 것은 이미 가능했지만, Rfp.ai는 두 가지 점에서 차별화된다. 첫째, 학습 데이터가 철저히 ‘승인된 문서’로 제한된다. 이는 기업이 AI를 도입할 때 가장 두려워하는 ‘할루시네이션’ 문제를 완화한다. 출처가 명확한 문서만 사용하기 때문에, AI가 만들어낸 내용이 근거 없는 주장이 될 위험이 줄어든다. 둘째, 생성된 문장에 출처를 직접 인용한다. 이는 단순히 답변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제안서 작성자가 해당 내용을 검토하고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정말로 기업의 생산성을 높일까? 대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에 가깝다. 제안서 작성 과정의 일부를 자동화하는 것은 분명 시간을 절약하지만, 그 시간만큼 다른 곳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예를 들어, 마케팅 팀이 AI로 초안을 빠르게 생성했다고 해서, 그 시간에 전략 회의나 고객 분석에 투자할지는 조직 문화와 프로세스에 달렸다. 오히려 AI가 처리해 준다는 이유로, 인간은 더 많은 제안서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부담만 늘어날 수도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AI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제안서의 핵심은 ‘왜 우리여야 하는가’를 설득하는 데 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성공 사례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숨은 니즈를 파악하고,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가치를 제시하는 일이다. Rfp.ai가 할 수 있는 것은 승인된 문서에서 ‘무엇을’ 가져올지 결정하는 것뿐이다. ‘어떻게’ 설득할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AI가 제안서의 80%를 채워준다고 해도, 나머지 20%가 승패를 가르는 경우가 많다.
기업용 AI 도구가 범람하는 요즘, 이런 도구들이 정말로 필요한지 묻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기술은 분명 문제를 해결하지만, 그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정의하지 않으면 새로운 문제를 낳을 뿐이다. Rfp.ai는 제안서 작성이라는 구체적인 고통 지점을 공략했지만, 그 고통의 본질이 ‘반복적인 노동’인지, 아니면 ‘설득력 있는 제안을 만드는 것’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전자라면 AI가 해답이 될 수 있지만, 후자라면 AI는 그저 더 빠른 복사기일 뿐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선택지를 갖게 된다. 하지만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결정하는 일이 더 어려워진다. Rfp.ai 같은 도구가 제안서 작성자의 시간을 절약해 준다면, 그 시간을 어디에 투자할지는 결국 조직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문제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고,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인간의 몫이다. 어쩌면 AI가 제안서를 대신 써주는 시대에는, 인간이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이 도구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AI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저 더 빠른 기계의 부속품이 될 뿐이다.
관련 자료: Show HN: Rfp.ai – answer RFPs from approved docs, with source cit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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