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란티르가 미국 국세청(IRS)과 체결한 “슈퍼 API” 계약서는 단순한 기술 문서가 아니다. 그것은 데이터 권력의 지도를 그려놓은 설계도이며, 현대 국가가 시민의 정보를 어떻게 수집하고, 분석하고, 통제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404미디어가 입수한 이 계약서는 팔란티르의 기술이 단순히 “데이터 통합”이나 “분석 도구”를 넘어, 거의 실시간에 가까운 세무 감시 체계를 구축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야심의 핵심에는 ‘Foundry’라는 플랫폼이 있다.
팔란티르는 2003년 피터 틸이 설립한 이래로 줄곧 “예측 분석”과 “대규모 데이터 융합”을 내세워왔다. 초기에는 국방부와 정보기관에서 테러리스트 추적용으로 사용되던 이 기술이, 이제는 민간 부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IRS와의 계약은 그 확산의 최신 사례다. 계약서에 따르면, 팔란티르는 IRS의 기존 시스템에 흩어진 데이터를 통합하고, 인공지능 기반의 “위험 평가” 모델을 적용해 세금 탈루 의심자를 자동으로 식별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이 시스템은 납세자의 금융 거래, 부동산 소유, 심지어 소셜 미디어 활동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문제는 이 기술이 가져올 편향과 오류의 가능성이다. 팔란티르의 알고리즘은 “위험 점수”를 산출하는데, 이 점수가 어떻게 계산되는지는 불투명하다. 계약서 어디에도 알고리즘의 투명성이나 편향 검증에 대한 요구사항은 없다. 이는 IRS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불공정하게 표적으로 삼을 위험을 내포한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이나 인종에 편중된 데이터가 입력된다면, 그 결과는 차별적일 수밖에 없다. 이미 미국에서는 세무 당국의 알고리즘이 저소득층이나 소수자 커뮤니티를 불균형적으로 감사하는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팔란티르의 시스템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그것을 설계하고 사용하는 이들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팔란티르의 시스템이 국방부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전쟁터에서 적을 식별하던 기술이 이제 시민의 금융 활동을 감시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이 전환은 기술의 진화라기보다 권력의 재구성에 가깝다.
팔란티르의 기술이 가진 또 다른 문제는 “블랙박스” 문제다. 계약서에 따르면, IRS는 팔란티르의 분석 결과를 최종 결정에 활용할 수 있지만, 그 분석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알 수 없다. 이는 납세자가 자신의 세무 조사를 이해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행정 결정의 근거가 투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팔란티르의 시스템은 그 원칙을 기술적으로 무력화시킨다.
이 계약서는 또한 데이터 경제의 민낯을 보여준다. 팔란티르는 IRS로부터 연간 1억 달러 이상의 비용을 받는다. 이 금액은 납세자의 세금으로 지불되는 것이다. 그런데 팔란티르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다른 정부 기관이나 민간 기업에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한다. 즉, 납세자의 데이터가 팔란티르의 수익 창출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는 데이터의 공공성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공공 기관의 데이터가 민간 기업의 손에 넘어가면서, 그 데이터가 어떻게 사용될지는 오직 기업의 윤리 의식에 달린 셈이다.
팔란티르의 IRS 계약은 기술과 권력의 결합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시스템이 효율성을 높이고 탈세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우리는 사생활의 침해, 알고리즘의 편향, 그리고 데이터의 상업화라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술이 가져올 이익과 위험을 균형 있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계약서는 그 균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기술이 권력을 강화하는 도구가 될지, 아니면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도구가 될지는 결국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팔란티르의 슈퍼 API가 가져올 변화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이미 데이터 기반의 행정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팔란티르의 사례는 이러한 시스템이 어디로 향할지를 미리 보여주는 경고등이다. 기술은 언제나 양날의 검이다. 그 검을 누가, 어떻게 휘두르느냐가 문제다.
더 자세한 내용은 404미디어의 원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