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흐. 고대에는 ‘박트리아’라 불렸던 이곳은 알렉산더 대왕이 지나갔고, 조로아스터가 태어났으며, 실크로드의 대상들이 쉬어갔던 땅이다. 천년의 역사가 이 먼지 속에 잠들어 있다.
폐허가 된 고대 성벽 앞에 서니, 나의 마흔 해가 우습게 느껴진다. 이 돌들은 이천 년을 버텼다. 수많은 제국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여기 서 있다.

역사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 가장 강대했던 제국도 무너졌고, 가장 화려했던 도시도 폐허가 되었다. 그렇다면 나의 실패와 좌절은 얼마나 작은 것인가.
발흐의 모스크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본다.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신을 향한 인간의 갈망, 의미를 찾으려는 영혼의 몸부림. 종교는 다르지만, 그 갈망은 같다.

박물관에서 본 유물들. 깨진 토기, 닳은 동전, 바랜 직물 조각. 한때는 누군가의 소중한 물건이었을 것들. 그 누군가도 나처럼 고민하고, 사랑하고, 두려워했겠지. 천년 전의 그 사람과 지금의 내가 다르지 않다.
해질녘 성벽 위에 올라 지평선을 바라본다. 저 멀리 힌두쿠시 산맥이 보인다. 알렉산더도 이 풍경을 보았을까. 칭기즈칸도 이 자리에 섰을까. 역사 속 거인들이 걸었던 길 위에 내가 서 있다.

발흐에서 깨달은 것. 역사의 무게 앞에서 겸손해질 것. 하지만 동시에, 그 역사를 만든 것도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역사가 될 수 있다.

천년의 무게가 어깨를 누르지만, 발걸음은 오히려 가벼워진다. 거대한 시간 앞에서 나의 짐들은 가벼워졌다. 발흐는 그렇게 나를 자유롭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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