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9가 가진 상징성은 오래전부터 매력적이었다. 끝과 시작의 경계, 완성과 미완성의 교차점. 그런데 갑자기 0이 등장한다. 존 피너모어의 블로그 글 “Inside Number 0″는 이 숫자 하나가 품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공포를 이야기한다. 기술이 인간의 상상력을 대체하려 드는 시대, 0이라는 숫자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한 수학 문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경계의 문제다. 어디까지가 기계의 계산이고, 어디부터가 인간의 해석인지 구분할 수 없는 지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영국 드라마 Inside No. 9는 숫자 9라는 공간을 무대로 다양한 장르와 서사를 실험해왔다. 블랙 코미디, 공포, 심리 스릴러가 한 공간 안에서 공존하는 방식은 마치 소프트웨어의 모듈화와 닮았다. 각 에피소드가 독립적이면서도 전체적인 틀 안에서 일관된 규칙을 유지하는 구조는, 잘 설계된 API처럼 예측 가능하면서도 매번 다른 결과를 내놓는다. 하지만 0이라는 숫자는 다르다. 9가 닫힌 시스템이라면, 0은 열린 시스템에 가깝다. 무(無)에서 시작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 이는 현대 기술이 추구하는 ‘확장성’과도 맞닿아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이 자원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0의 세계에 발을 디딘 셈이다.
그런데 0은 또한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Inside No. 9의 무대 버전인 Stage/Fright가 “코미디와 공포의 결합”을 표방하는 것처럼, 기술의 0이라는 개념도 양면성을 지닌다. 빅데이터의 0은 결측치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모든 데이터의 시작점이다. 인공지능이 0에서부터 학습을 시작할 때, 우리는 그 0이 어떤 편향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다. 20년 전만 해도 ‘널 포인터 예외’가 개발자의 악몽이었지만, 이제는 ‘0의 편향’이 더 큰 문제다. 시스템이 0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 된다. 문제는 그 해석의 주체가 인간인지 기계인지 점점 모호해진다는 점이다.
0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술이 인간을 모방하려 할 때, 가장 먼저 마주치는 벽이 바로 이 0의 문제다. 인간은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도 의미를 창조하지만, 기계는 0을 0으로만 인식한다. 드라마 Inside No. 9의 각 에피소드가 관객에게 “이게 진짜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듯, 기술도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알고리즘이 생성한 텍스트, 딥페이크 영상, 자동화된 의사결정 시스템. 이 모든 것들이 0에서 시작해 1, 2, 3으로 나아가는 동안, 우리는 그 0이 어떤 의도를 품고 있었는지 알 길이 없다. 어쩌면 0은 기술이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0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드라마가 9라는 숫자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듯, 기술도 0이라는 개념을 통해 새로운 서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서사가 인간의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0은 비어 있지만,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기술이 0을 계산하는 동안, 우리는 그 0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코미디가 될지, 공포가 될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장르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0이라는 숫자가 더 이상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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