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공상과학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던 장면이 있다. 거대한 운석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과학자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외치는 장면. 그 과학자들 중 한 명이 바로 지질학자였다. 그들은 언제나 가장 먼저 위험을 감지하고, 가장 늦게 대피하는 이들처럼 보였다. 현실에서는 어떤지 궁금해 본 적은 없지만, 최근 연구 결과가 그 궁금증을 비극적인 방식으로 해소해 주었다.
영화 속 지질학자의 사망률이 30%를 넘는다는 통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이는 우리가 위험을 어떻게 인식하고, 그 위험을 어떻게 소비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위험을 ‘안전하게’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지진, 화산, 운석 충돌 같은 자연재해는 이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재현되고, 그 결과는 영화라는 형태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위험은 점점 추상화되고, 그 위험을 다루는 사람들의 생명은 단순한 ‘장치’로 전락한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이 연구 결과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오류 처리’의 문제였다. 우리가 작성하는 코드에서 예외 처리는 언제나 가장 마지막에 고려되는 부분이다. “이건 일어날 리가 없어”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코드는 결국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원인이 된다. 영화 속 지질학자들이 그렇다. 그들은 위험을 경고하지만, 그 경고는 스토리의 일부로 소비될 뿐이다. 현실의 위험 경고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지진 예보, 기상 악화 경고, 심지어 소프트웨어 보안 경고까지 – 우리는 그 경고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위험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 위험을 다루는 방법을 잊어버린 채 결과만 소비한다.
이 연구는 또한 ‘전문가의 탈인격화’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영화에서 지질학자는 과학적 지식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스토리텔링의 도구로 사용된다. 그들의 죽음은 관객에게 긴장감을 주기 위한 장치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는 기술 분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개발자는 코드의 일부가 되고, 보안 전문가는 경고 메시지의 일부가 되며, 데이터 과학자는 통계 수치의 일부가 된다. 우리는 전문가의 경고를 들을 때 그들의 인간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저 ‘시스템의 일부’로만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위험은 언제나 인간적인 차원에서 발생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떠올려 보자. 기술자들은 경고를 했지만, 그 경고는 조직의 판단 과정에서 무시되었다. 영화에서처럼, 현실에서도 전문가의 목소리는 종종 배경음으로 전락한다. 문제는 그 배경음이 결국 재앙의 전주곡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연구가 던지는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위험을 스펙터클로 소비할 것인가? 영화 속에서 지질학자가 죽는 것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현실에서 전문가가 무시당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위험을 높인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위험을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위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발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경고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작성하는 오류 메시지, 경고 알림, 시스템 로그에는 언제나 인간의 얼굴이 있어야 한다. “이 코드는 실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가 아니라 “이 코드가 실패하면 누군가에게 피해가 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술은 인간의 삶을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지, 인간의 생명을 도구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영화 속 지질학자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위험은 언제나 현실이며, 그 위험을 다루는 사람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 사실을 잊을 때, 위험은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 된다.
연구 결과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Movie geologists have an over 30% mortality rate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