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앞에 앉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는 생각이 있다. “저 멜로디를 그대로 악보로 옮길 수 있다면.” 음악을 들으며 손가락이 따라가는 그 순간, 머릿속에선 이미 음표들이 줄지어 서 있지만, 막상 종이 위에 옮기려 하면 모든 것이 흐릿해진다. 음높이, 리듬, 화성—이 세 가지가 어긋나는 순간, 그 음악은 더 이상 같은 곡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보를 ‘읽는’ 법을 배우기 전에, 먼저 악보를 ‘쓰는’ 법을 포기하곤 했다. 기술이 이토록 발전한 시대에도, 음악을 시각화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인간의 영역이어야 한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그 믿음에 금이 가고 있다. 오픈소스 프로젝트 Oh Sheet는 유튜브 링크나 오디오 파일만으로도 즉석에서 연주 가능한 피아노 악보를 생성해낸다. AI가 음악을 ‘듣고’ 음표로 변환하는 이 과정은, 언뜻 보면 마법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오랫동안 간과해온 기술의 본질이 숨어 있다. 음악은 결국 데이터다. 소리의 진동, 주파수의 변화, 시간의 흐름—이 모든 것이 수치로 환원될 수 있는 신호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악보를 쓰는 일을 기계에게 맡기는 데 주저했을까?
그 답은 아마도 음악에 대한 낭만적 환상 때문일 것이다. 악보는 단순히 음표의 나열이 아니라, 작곡가의 의도, 연주자의 해석, 청중의 감상이 얽힌 복잡한 그물망이다. 한 소절의 템포가 미묘하게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것, 페달의 깊이, 심지어 연주자의 숨소리까지—이 모든 것이 악보에는 담기지 않지만 음악에는 존재한다. 기계가 생성한 악보는 이런 미묘한 ‘인간성’을 놓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많은 음악가들은 AI가 만든 악보를 ‘완벽하지만 차가운’ 결과물로 치부하곤 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문제일까?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부족함을 메우는 도구였다. 부족함이 사라지면, 그다음에는 무엇이 남을까?
Oh Sheet가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단순히 ‘기술의 승리’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 도구는 음악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재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예를 들어, 한 번도 악보로 출판된 적 없는 즉흥 연주나 라이브 공연을 녹음한 뒤, 이를 악보로 변환해보면 어떨까? 연주자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패턴, 반복되는 리듬의 구조, 예상치 못한 화성 진행이 드러날지도 모른다. 음악 이론을 배우지 않은 사람도 자신의 연주를 분석할 수 있게 되고, 작곡가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데 이 도구를 활용할 수 있다. 기술이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확장시키는 셈이다.
물론 한계는 명확하다. 현재의 AI는 단일 악기(주로 피아노)의 음을 분리하는 데 강하지만, 오케스트라나 복잡한 화성이 얽힌 음악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악보의 ‘표현’—강약, 프레이징, 아티큘레이션—을 완벽히 재현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 자체의 복잡성 때문이다. 음악은 수학이지만, 동시에 감정이다. 기계가 감정까지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이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다. Oh Sheet와 같은 도구가 대중화되면, 음악 교육은 어떻게 바뀔까? 악보를 읽고 쓰는 것이 필수였던 시대에서, 이제는 음악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혹은 반대로, 악보의 가치가 더 높아질 수도 있다. 기계가 생성한 악보를 인간이 직접 수정하고 다듬는 과정이 필수가 된다면, 악보를 읽고 쓰는 능력은 오히려 더 전문적인 기술로 자리 잡을 것이다.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할 때마다 우리는 불안해한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켜왔다. 인쇄술이 책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카메라가 회화의 개념을 바꾸었으며, 디지털 음악이 음반 산업을 재정의했다. 음악을 악보로 옮기는 일도 마찬가지다. Oh Sheet는 음악을 ‘복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음악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을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음악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조금 더 겸손해질지도 모른다.
아직은 이 도구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기술은 언제나 불완전에서 시작해 완성으로 나아간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불완전한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음악가들은 이제 악보를 쓰는 데 시간을 덜 쓰고, 연주와 창작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이 기술의 진짜 역할일지도 모른다.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 것.
관련 프로젝트는 GitHub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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